건강에 대한 잘못된 상식 가운데 아마도 불멸의 지위를 얻은 게 있다면 “하루에 꼭 물 8잔을 마셔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고,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데도 미디어에서 물 많이 마셔야 한다, 탈수 증세는 위험하고 당신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매년 여름이면 수없이 듣게 된다.
이런 뉴스는 멀쩡한 어른과 아이가 물을 덜 마셔서 탈수 증세를 겪는 것처럼, 심지어 이 탈수 증세가 마치 심각한 전염병처럼 번졌다고 상황을 묘사한다.
차근차근 문제의 주장을 해부해보자.
나는 지난 2007년 <영국 의학지(British Medical Journal, BMJ)>에 이런 근거 없는 믿음에 관해 기고한 글 한 편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글에서 첫 번째로 반박한 주장이 바로 매일 적어도 8온스(약 240mL) 들이 잔으로 물을 8잔은 마셔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이 글은 내가 지금껏 발표한 어떤 연구보다도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에도 실렸다.
하지만 반짝 회자하였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2년 뒤에는 아예 책을 냈고, 물을 8잔씩 안 마셔도 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조목조목 제시했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사람들이 더는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말 그대로 요지부동이었다.
사람들이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는 근거 없는 생각에 집착하는 이유의 연원을 찾아보니, 1945년 식품영양위원회(Food and Nutrition Board)의 권장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하루 2.5ℓ 정도의 물이 필요하다. 이 문구만 보면 정말 틈만 나면 물을 마셔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뒤이어 오는 문장은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있는 수분만으로도 필요한 물의 대부분이 충당된다.”
과일, 채소를 먹는 것, 주스, 맥주, 심지어 차와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탈수 증세가 오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물 마시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도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음료 가운데 가장 좋은 음료로 물을 권장해 왔다. 다만 물을 마시는 것 외에도 수분을 섭취하는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몸은 실제 탈수에 이르기 한참 전에 수분을 보충하라는 신호를 보낼 정도로 정교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러 설과는 달리 물을 많이 마시는 게 특별한 기저 질환이 없는 사람들의 건강에 더 좋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더 촉촉해진다거나 건강해 보인다거나 주름이 줄어든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으려는 연구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이나 질병이 발생한 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식습관 등 생활 전반을 비교, 대조해보는 후향적 코호트 연구(retrospective cohort studies) 결과, 물을 마시는 것과 건강한 상태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역학 연구에서도 그렇듯이 이것만으로 물을 마신 덕분에 건강해졌다는 인과 관계를 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이 연구에서 정의한 물을 많이 마신다는 기준은 하루 8잔에 훨씬 못 미친다.
건강상의 다른 여러 위험 인자의 영향력을 예측, 통제하는 적극적 연구(prospective studies)에서도 건강한 사람들이 수분을 더 많이 섭취하는 것이 신장 기능이나 사망률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작위 통제 시험 결과도 신장결석 재발 예방 등 몇몇 특정 사례를 제외하면 마찬가지였다. 몸에 수분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 실제 탈수 증세는 질병이나 격렬한 운동으로 많은 땀을 흘렸을 때나 물을 비롯해 액체를 마시지 못하는 상황일 때 나타나는데, 정도에 따라 아주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적 탈수 증세는 대부분 미리 징후가 나타난다.
그런데 뉴스나 광고는 여전히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며 대중을 설득하려고 한다. 항상 물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수분을 보충하는 걸 건강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생수 판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올여름에 특히 이런 보도가 많았는데, <미국 공중보건학지(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는 2009년에서 2012년까지 미국 전역에 걸쳐 6~19세 어린이, 청소년 4,134명을 대상으로 한 건강, 영양 검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이 특별히 관심을 두고 뽑아낸 데이터는 소변 삼투질 농도(urine osmolality)의 평균치로, 쉽게 말해 소변이 얼마나 짙었는지를 측정한 수치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변이 더 짙고 볼 수 있다.
절반이 넘는 어린이, 청소년의 소변 삼투질농도가 킬로그램당 800밀리 오스몰(moms/kg) 이상이었다. 그런데 하루에 8온스(약 240mL) 이상 물을 마시는 아이들의 소변 삼투질 농도는 그만큼 물을 안 마시는 아이들보다 평균 8밀리 오스몰 낮았다.
만약 소변 삼투질 농도가 킬로그램 당 800밀리 오스몰 이상일 때 이를 탈수 증세로 정의한다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 된다. 이 연구가 그랬다.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탈수 증세를 겪고 있고 물을 충분히 안 마셔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아는 어떤 임상의도 이를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지만 지금껏 거의 한 번도 소변 삼투질 농도를 탈수 증세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이는 내가 아는 동료, 선후배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설사 소변 삼투질 농도를 참고한다고 해도 킬로그램당 800밀리 오스몰을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보통 킬로그램당 1 오스몰까지는 여전히 정상 범주로 간주한다는 연구가 대다수였다. 또한, 어린이는 어른보다 정상으로 간주하는 농도의 범위 대가 넓었다. 결국 오스몰을 어린이가 탈수 증세에 시달린다고 여길 기준으로 삼을 만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무작위 소변 검사를 한 아이의 소변 삼투질 농도가 킬로그램 당 800밀리 오스몰 정도 나왔다고 해도 이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지난 2002년 <소아청소년과지(Journal of Pediatrics)>에 탈수 증세에 관한 연구가 소개됐는데, 독일 남자 어린이의 평균 소변 삼투질 농도는 킬로그램당 844밀리 오스몰이었다. 나라별로 이 수치에 상당히 차이가 있었는데, 케냐 어린이의 경우 평균 392밀리 오스몰이었지만 스웨덴 어린이는 평균 964밀리 오스몰이었다.
소변 삼투질 농도 800밀리 오스몰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증거가 이렇게나 많지만, 800밀리 오스몰을 기준으로 삼은 비슷한 연구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지난 2012년 <식품 영양과 신진대사>에 발표된 연구는 프랑스 어린이의 2/3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고, <공중보건 영양학>에 실린 다른 연구도 뉴욕시와 LA 어린이의 2/3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두 연구는 각각 네슬레 생수(Nestaé Waters) 사와 네슬레의 자회사인 네스텍(Nestec)의 지원을 받았다.
물론 건강을 위해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하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멀쩡한 사람을 가리키며 질병을 앓고 있다고 꾸짖는 꼴이나 다름없다. 매년 계속해서 수많은 연구가 가리키는 결론이 “전체 어린이의 2/3가 검사 수치상 비정상”이라면, 상식적으로 어린이가 비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의하는 해당 연구 기준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큼에도 여전히 물을 더 마시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영부인 미셸 오바마도 “물을 마시자(Drink Up)” 캠페인을 벌였다. 2013년 백악관 식품영양 정책보좌관 샘 카스는 “미국인의 40%가 하루에 마셔야 할 물 권장량의 절반도 안 마신다”라고 말했다.
사실 사람들이 하루에 꼭 마셔야 할 물의 공식적인 권장량은 없다. 무얼 먹는지, 어디에 사는지, 몸집에 따라, 생활 습관에 따라 마셔야 할 물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오래 살고, 물이 아니라도 마실 거리가 이렇게 다양했던 때가 인류 역사에 또 있었을까? 그런데도 우리가 모두 만성적인 탈수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억지 주장은 제발 그만하자.
'이탈리아 Italy > 로마사 (Roma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의 생애 (0) | 2020.12.05 |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0) | 2020.12.01 |
작가를 희망하는 당신에게, 좋은 질문을 드립니다. (0) | 2020.11.30 |
D - 73 미라클모닝 실천중 (2020/11/30) (0) | 2020.11.30 |
당신은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습니까? (0) | 2020.11.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