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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신6

황제 신격화 경향 (2) - 카이사르 신전 /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 하드리아누스 신전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Tempio di Giullo Cesare) 기원전 48년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고 3년 후 폼페이우스 아들들의 반란을 진압해 명실상부한 일인자의 자리를 굳힌 카이사르는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내전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전면적인 재건 개혁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파르티아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삼두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시리아 속주를 차지한 크라수스가 군사적 영예를 얻기 위해 기원전 54년 시도한 파르티아 원정은 7개 군단이 궤멸하고 군기들마저 빼앗기는 치욕적인 사건이었고, 그 자신이 죽는 바람에 삼두체제를 깨버리는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파르티아 보복 원정은 내전을 종결시킨 카이사르가 치러야 할 우선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그는 원정 출.. 2020. 12. 22.
외부 신들의 유입 (1) - 12신상 열주 회랑 / 디오스쿠로이 신전 / 아폴로 외부 신들의 유입 로마는 일직이 왕정 시대부터 토스카나와 라찌로 북부 지방에 자리 잡은 에트루리아 도시국가들과 남부의 그리스 식민 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동방의 종교를 유입했다. 유피테르와 마르스, 퀴리누스를 받드는 로마 고유의 3신 숭배는 이미 기원전 6세기 타르퀴니우스 왕가에 의해서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3 신 숭배로 바뀌었고,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형제 신이 남부 해얀의 그리스 식민 시 타란토를 통해 들어왔다. 또한 포에니 전쟁을 계기로 지중해에 진출한 로마는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그리스 신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고, 곧 바로 주요 특징이나 신화의 내용에 따라 로마의 신들과 같은 격으로 놓거나 그에 걸맞은 신들을 적당히 꾸며내어 단일한 그리스 로마 종교를 확립했다... 2020. 12. 20.
로마의 실용적 종교관 - 토레 아르젠티나 광장 / 화해의 신전 실용적 종교관 로마 인들의 실용적, 현실적 종교관은 로마 시내에 세워진 수많은 신전들의 이름 몇 가지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 위 신의의 신전(Aedes fidei)을 비롯해 토레 아르젠티나 광장의 행운(Fortuna)의 신전, 산 니콜라 인 카르체레 성당 자리에 있었던 희망(Spes)의 신전, 퀴리날레 언덕의 건강(Salutaris)의 신전, 심지어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옆에 좋은 일(Bona)의 신전 등 온갖 좋은 의미의 개념을 다 신으로 모셨을 뿐 아니라, 로마 광장의 화해(Concordia)의 신전이나 황제들의 광장의 평화(Pax)의 신전, 복수자 마르스(Marte Ultore) 신전 등 역사적 사건을 기념비가 아니라 신전을 세워 기렸을 정도였다. 토레 아르젠티나 광장(L.. 2020. 12. 19.
로마의 신 (3) - 라레스, 페나테스, 게니우스 베스타 여사제관(Casa delle Vestali) 베스타 신전 옆에 위치한 베스타 여사제관은 신전 안에 모셔진 성화를 지키고, 또 이에 관련된 의식을 접전하는 여사제(베스탈레 Vestale)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6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고, 트라야누스 시대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에 입은 화재 때문에 복구작업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확장되었다. 여사제들은 6명이었고, 여섯 살부터 열 살 사이의 소녀들 중에서 뽑아, 30년 동안 순결을 지키며 사제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대사제가 여사제를 최종적으로 선발했는데, 초기에는 귀족들의 가문에서만 선발하다가, 나중에는 평민 출신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이렇게 엄선된 여사제는 국가로부터 상당한 급료를 받았으며, 사회적 지위도 높아 공공행사나..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