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마노6 신전 건축의 백미 - 로마와 비너스 신전(Tempio di Roma e Venere) 신전 건축의 백미 고대 로마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여행자들은 로마 건축의 육중한 벽돌 콘크리트 구조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마도 그 옛날 사람들이 벽돌과 콘크리트를 써서 이러한 건물들을 세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으리라. 게다가 이 건축 자재들은 오늘날 사용하는 것들 것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로마 시대 유적들은 건축물이든 조형물이든 간데 벽돌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벽돌은 거대 도시 로마를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재였다. 심지어 성벽 밖 지하에 뻗쳐 있는 수많은 지하묘지들의 벽이나 무덤 뚜껑도 벽돌로 만들었으니, 땅 위, 아래 할 것 없이 널린 게 벽돌이고 벽돌 공장 없는 귀족은 귀족도 아니었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이다. 제정 시대에 들어,.. 2020. 12. 30. 팔리티노(Palatino) 언덕 팔라티노 언덕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753년 4월 21일 로물루스가 테베라 강이 굽이 보이는 이 언덕 위에 정사각형의 경계선(Pomerium)을 긋고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케르말루스 능선에서 기원전 9세기 말에서 7세기 초의 것으로 보이는 움막집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전설상의 로물루스의 집과 위치가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이 마을이 로물루스 당시의 로마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역사적 증거는 전혀 없다. 또한 기원전 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흔적들과 기원전 4세기 성벽 유적이 발견되었다. 사실 로마 창건 신화는 기원전 3세기경에야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건국 연대도 작가마다 달랐는데, 기원전 1세기에 소小 카토(M.Porcius Cato)(기원전 95~4.. 2020. 12. 15. 포로 로마노(로마 광장)의 유적들 2 로스트라, 움벨리쿠스움 벨리 쿠스, 밀리아리움 아우 레 룸 로스트라(Rostra)는 정치가들이 모여든 시민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펴던 연단으로 혼란기에는 이 연단 위에서 포고문이 읽히기도 했다. 기원전 338년 반란을 일으킨 볼 시(Volsci)족을 안 찌오(Anzio)에서 격파한 후 볼 시 족의 함선들에게 탈취한 청동 충각(Rostra)들로 이 연단을 장식했기 때문에 로스트 라라 불리게 되었고, 로스트라가 연단을 뜻하는 낱말이 되었다. 원래는 원로원 앞 코미 티움에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코미 디움을 정리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시키도록 지시했고, 기원전 29년 아우구스투스가 이전 기념식을 거행했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가문 이름인 율리우스를 붙여 로스트라 율리아(Rostra Iulia)라고 한다. 로스트라는.. 2020. 12. 13. 포로 로마노(로마 광장)의 유적들 1 쿠리아 Curia(원로원) 쿠리아는 원래 부족의 하위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로마 인들은 정치, 종교적 성격의 모임을 갖는 공공건물도 쿠리아 라 했으며, 로마 광장에 있는 원로원 건물도 쿠리아라 불렀다. 툴리우스 호스틸리우스(Tulius Hostilius) 왕이왕이 원로원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호스틸리우스 원로원은 기원전 1세기 초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기원전 80년 술라(Sulla)에 의해 재건되었고, 기원전 52년 클로디우스 장례식 때 발생한 소요로 완전히 사라졌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시작해 아우구스투스 때 완성된 율리우스 원로원(Curia Iulia)은 북쪽으로 약 10m정도 자지를 옮겨 세워졌는데 28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원로원 건물은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 2020. 12. 1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