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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2세9

미켈란젤로_ 도안 (1) 로셀리가 인부들과 한창 피에르마테오의 옛 프레스코를 천장에서 뜯어내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할 새 그림을 도안하느라 분주했다. 교황은 천장 프레스코 도안의 기본 지침을 자신이 직접 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정한 대강의 도안에 맞추어 세부 도안에 몰입했다. 교황이 제시한 도안은 실제로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확실치 않다. 미켈란젤로는 비망록에 자신은 다만 알리도시 추기경이 정한 ‘조건과 합의’대로 작업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런 진술은 추기경이 도안 작업에 깊숙히 개입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미술계에 있어 의뢰인이 작품을 주문할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주문자가 지불 청구서만 받아 준다면 어떤.. 2021. 3. 16.
미켈란젤로_ 젖은 석고 위의 회화 (2) 축축한 석고 패널이 마련되면 프레스코 화가들은 그 위에 미리 준비해 놓은 밑그림을 부착시킨다. 벽이나 천장에 갖다 대고 작은 못을 박아 고정시킨 밑그림을 각 인물과 장면의 형판(석공 등이 어떤 모양을 만들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일정한 모형을 새겨 만든 널빤지.)으로 쓰인다. 밑그림을 부착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각기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선택해 쓴다. 첫 번째 방식은 스폴베로(spolvero)로 밑그림에 포함된 소묘의 선을 따라 미세한 구멍을 무수히 낸 후, 구멍 안에 목탄가루를 뿌리거나 색 가루 주머니를 구멍 난 밑그림 위에 탁탁 친다. 그런 뒤 석고 표면 위에 일단 대략적인 윤곽을 남기고 붓으로 강화해 나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첫 번째에 비해 좀 더 신속한 편이다. 밑그림에 칠해진.. 2021. 3. 12.
미켈란젤로_ 참회 (2) 그로부터 1년은 미켈란젤로에게 매우 참담한 한 해였다. 침대 하나를 세 사람이 써 비좁은 잠자리 문제로 마음이 영 편치 않은 데다,볼로냐 산 포도주는 값만 비쌌지 아주 저질이었다. 거기다 기후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름이 되자 미켈란젤로는 드디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기 오고 나서 비라고는 단 한 차례밖에 내리지 않았다. 날씨는 도 얼마나 더운지, 여기처럼 더운 데도 없을 거야.”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여전히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확신했다. 볼로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 부오나로토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여튼 조만간 무슨 일이 터져 내 인생도 여기서 끝장날 것 같구나.”하고 말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적이라고 단정한 브라만테가 여전히 볼로냐에 남아.. 2021. 3. 10.
미켈란젤로_ 참회 (1) 파비아의 추기경 프란체스코 알리도시는 교황이 바티칸에서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자 동지였다. 39세의 알리도시 추기경은 몇 해 전 로드리고 보르자의 교황 독살 음모를 사전에 탐지해 교황의 목숨을 구한 이후 줄곧 총애를 받아 왔다. 그러나 매부리코의 미남형 알리도시는 부도덕한 행실로 소문이 자자해 로마에서 교황 외에 다른 친구나 지지자가 없었다. 반대파들은 알리도시가 매춘부와 어울린 뿐만 아니라 여장 차림을 하고, 소년들을 유혹하며, 마술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하지만 곧 새로운 동조자가 생겼다. 알리도시는 미켈란젤로가 로마에서 의지해야 할 극소수 인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대단한 미술 애호가이기도 한 알리도시는 1505년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영묘 작업을 실행하기 위해 로마로 돌아오는 데 큰.. 2021.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