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Pantheon]
그리스어로 ‘모든 신’을 뜻하는 판테온은 원래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사위이며 잠정적인 후계자였던 아그리파가 기원전 27년에서 25년 사이에 세운 만신전 건물이다. 이 건물은 서기 80년 화재로 소실되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복구했으나 트라야 누스 시대에 또 한 차례 화재 피해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118년에서 125년 사이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하였다.
현관 위 청동 비문에는 “세 번 콘술직을 맡은 루시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웠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판테온을 처음 축조한 아그리파를 기념하여 썼던 것이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써넣은 것일 뿐 현재의 건물은 아그리파와 관계없는 하드리아누스 시대 건축이다.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은 현재 건물의 입구와 정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입구가 난 직사각형 건물(약 20 ⅹ 44m)이었던 반면, 현재 남아 있는 판테온은 하드리아누스가 기존의 판테온 자리를 빌려 완전히 다른 모양의 신전으로 세운 것이다. 청동 비문 아래 붙어 있는 작은 비문의 내용대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 시대에 한 차례 보수된 이 신전은 608년에 동로마 제국의 포카 황제가 보니파키우스 4세 교황에게 기증하여 다음 해에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판테온은 올림푸스의 모든 신에게 바쳐진 신전, 또는 7개 행성의 7신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일반적인 신전들과 달리 그 바닥 모양이 둥근 원형 신전(톨 로스[Tolos],로톤다[Rotonda])이다. 이 신전은 높이 30m에 벽의 두께가 6.2m인 원통 위에 거대한 반구가 올려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원통의 지름과 바닥에서 반구 정상까지의 높이가 똑같이 43.3m이다. 이 반구형 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돔형 천장 중의 하나이다.
현관 주랑은 높이가 12.5m에 둘레가 4.5m인 기둥 1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둥들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하나짜리 화강석들이다. 현관 위 이등변 삼각형 부분(프론톤)은 금으로 도금된 청동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현관의 천장도 도금 청동 판으로 덮여 있었으나, 1625년 바르베리니 가문의 우르바누스 8세 교황의 지시로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청동 판을 뜯어내어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제단을 덮는 거대한 천 개(관(棺)의 뚜껑)(발다키노[Baldacchino])를 세웠다. 이 때문에 ‘야만족도 하지 않는 짓거리를 교황이 저질렀다.’는 비꼬는 말이 나돌게 되었다.
현관 주랑을 지나 거대한 2개의 청동 문 안으로 들어가면 둥근 신전 내부가 나온다. 판테온의 내부는 지금도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황색 기둥들은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 내벽은 2층인데 아래층에는 6개의 에세드 라(둥글게 파인 공간)와 8개의 에디 콜라[Edicola](직각으로 파인 작은 공간)가 있고,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안쪽 벽감은 코린트식 기둥 2개와 대칭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아치 위에는 타이탄들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청동 조각이 있었다. 7개의 제단이 원통형 벽면에 둘러서 있고, 14.2m 높이의 대리석과 화강석 재질의 기둥 8개가 있다.
천장은 5층으로 각층에 28개의 사각 홈이 위층으로 가면서 작아지고 얇아져 천장의 무게를 줄이면서 반구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천장과 벽면은 아래와 위가 재질이 달라 위로 갈수록 가볍게 되어 있다. 맨 위는 석회화와 화산석 조각을 섞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그 아래는 응회와 벽돌을 사용해 쌓았으며, 벽면의 윗부분에는 벽돌과 콘크리트를, 중간 부분에는 응회, 벽돌, 콘크리트를, 아랫부분에는 석회화와 벽돌을 사용했다. 바닥은 석회화와 콘크리트를 다졌으며, 천장은 처음에 청동 기와로 덮여 있었으나 8세기에 연판(활자 조판의 원판으로 지형을 뜬 다음, 이것을 평연판 또는 원연판용의 연판주조기에 걸고, 315℃ 정도의 열에 녹인 연판납물을 부어서 만든 복제판을 말한다.)으로 교체되었다.
천장 중앙에 청동 반지로 테두리를 두른 구멍(오쿨루스 [Oculus])이 나 있는 데, 지름이 9m다. 판테온의 내부 공간을 밝히는 유일한 광원인 이 구멍은, 우주를 상징하는 원형 신전 안에서 우주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하였고, 또 제사 의식을 치를 때 연기가 쉽게 빠져나가게 하는 실용적인 기능도 했다. 또한 천장 사각 홈들 안에 청동 별들이 붙어 있어서 햇빛이 비치면 이 별들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판테온 내부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와 그의 아들 움베르토 왕의 무덤이 마주 보고 있고, 10시 방향 바닥에 이 건축물을 극도로 아꼈던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어 라파엘로 찬미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닥은 기하학무늬로 원래 벽을 장식하고 남은 여러 종류의 대리석 판을 깔았었는데 현재의 것은 복원된 것이다. 현재 판테온의 겉면은 벽돌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흰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고, 색이 칠해져 있었다. 판테온 뒤쪽에 남아있는 벽돌 벽은 최초의 대형 목욕장인 아그리파 목욕장과 연결된 네투나 바실리카의 북쪽 벽 유적으로 이 또한 아그리파가 세우고 하드리아누스가 재건한 건물이다.
판테온 앞 광장은 원형의 신전 때문에 로톤다[Rotonda] 광장이라 불리는데, 중앙에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 때의 오벨리스크가 분수 위에 올려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한 블록 옆에 있었던 이시스 세라피스[Iseo Campense] 신전을 장식한 오벨리스크를 옮겼다 놓은 것이다.
판테온 왼쪽 뒤편에는 미네르바 광장이 있다. 이 광장에는 1667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조각한 코끼리 상 위에 이시스 세라피스 신전에서 옮겨온 기원전 6세기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이 광장은 공화정 말기에 정무관을 선출하는 투표장으로 사용된 공간이라 담장이 쳐져 있어서 사입타 [Saepta]라 했는데, 아우구스투스가 큰 광장 건물로 확장하고 사입타 율리아[Saepta Iulia]라 명명하였다. 투표장 입구 양쪽에 있는 회랑이 당시 미술품 상가였다. 사입타의 남쪽에는 개표소(디리비토리움 [Diribitorium])가 있었다.
판테온에서 나보나 광장 쪽으로 두 번째 골목인 산테 우스타 키오 길에 있는 산테 우스타 키오(Sant’Eustachio)성당 벽에 네로 목욕탕(60~64년)의 기둥들과 대들보 단편이 남아 있고, 한 블록 건너 이탈리아 상원 건물인 마다마 궁전에 네로 목욕탕 유적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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