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로마로 온 동방신들 (1) - 미트라스교 / 태양신

by TES leader 2020. 12. 29.
728x90
반응형

미트라스(Mitras) 교

페르시아 신 미트라스는 제정 시대에 로마에서 유행한 동방 종교 중의 하나로 인도의 창조의 신, 우주질서의 신 미트라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Avesta]에는 미트라스가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는 선한 영들의 우두머리로 나오는데, 훗날 인도의 미트라스와 결합하여 태양신이 되었다. 기우너전 4세기 초반부터 페르시아에서 성행한 미트라스 태양신 숭배가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그리스의 헬리오스 신과 소아시아 지방의 바알[Baal] 신과 동격이 되었다. 헬리오스는 하늘을 나는 황금마차를 몰아 세상에 빛을 준다는 타이탄 족 태양신이었고, 바알 신은 대기의 신, 목축의 신이었으나 태양신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성서에 나오는 우상 바알 신도 바로 이 신을 가리킨다.

지중해 해적 소탕전을 수행한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6년경 사로잡은 킬리 키아 해적들을 데려오면서 로마에 알려지게 된 미트라스 신앙은 제정 시대에 들어서 로마 군 병사들과 상인, 노예들을 통해 신속히 이탈리아와 로마 속주들에 확산되었다. 미트라스교 신자들은 죽은 후에 영혼이 부활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는데, 남성만이 신자가 될 수 있었다. 입교자는 7단계의 비밀 입교 의식을 거쳐 황소의 피로 세례를 받은 후 공동체에 가입하였는데, 이들을 교육시키는 공간이 사당 옆에 있었다. 전형적인 사당, 미트래움[Mitreum](Mitreo)은 샘물이 솟아나는 바위 굴 안이었으며, 예배당 안쪽 깊숙한 암벽에 황소를 도살하는 미트라스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거나 기단 위에 같은 모습의 석상이 놓여 있었다. 미트라스 신이 성스러운 황소를 잡아 죽인 일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지고 뜨는 태양이 사망과 부활을 가리키는 것과 일맥상통했고, 황소가 흘린 피는 속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미트라스교는 부활 신앙의 특성과 비교적인 성격, 그리고 하층민을 주요 전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때문에 신생 크리스트교와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는데, 특히 두 종교가 기존의 종교들과 달리 배타적인 입교 및 구원 종교라는 점이 작용하였다. 성장기 로마 사회가 실리적이고 사회적인 종교를 필요로 했던 데 비해 다양한 종족이 혼합되고 더 안정된 도시 문화를 이룬 제정기 로마 사회는 기존의 종교들보다 덜 사회적이고 좀 더 내면적이며 영적인 종교를 필요로 했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트라스교나 크리스트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크리스트교와 유사한 점이 많은 까닭에 교부들은 발생 연대를 무시하고 이 종교가 크리스트교를 모방한 사탄의 종교라고 비판하였는데, 미트라스교가 로마 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시기가 크리스트교보다 늦은 것은 사실로 정확히 140년부터였고, 3세기 초 세베루스 왕조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불굴의 태양신(Sol Invictus)

소아시아 지방의 바알 신도 제정기 로마에서 위력을 떨친 신이다. 헬리오스, 아폴로, 미트라스와 격이 같은 바알 신은 로마 인들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불굴의 태양신으로 받들어졌으며, 제정 초기에 이미 로마에 알려졌지만, 3세기 군인 황제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18년 제위에 오른 헬리오 가발 루스는 원래 시리아 에메사의 태양신 바알 신전의 사제였다. 그의 이름 자체가 태양신 바알을 의미하여 그가 황제 취임 후 이 신을 최고신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측면에서, 비록 이 황제의 통치기간이 짧은 데다 바알 신앙의 지역적 분파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태양신 숭배는 로마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향후 태양 신앙의 전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굴의 태양 신앙은 3세기 후반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공식 신앙으로 삼고 자신을 태양신의 현신이라 선포하였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 시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축조하고 3세기 혼란 국면을 회복세로 돌린 황제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도 태양 신앙의 신봉자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273년 팔미라를 재탈환 후 바알벡[Baalbeck](태양신의 도시, 그리스어로는 헬리오폴리스)의 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현재의 산 실베스트로[San Silvestro]는은 16개의 자주색 원주로 이루어진 원형 신전을 직사각형 담장이 둘러싼 모양인데, 이탈리아 재정 복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산타 소피아 성당을 짓는 데 쓰기 위해 자주색 원주들을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갔기 때문에, 로마 유적을 연구한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가 남긴 도면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현존하는 유물이 전혀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크리스트교 개종 동기로 자주 언급되는 전설은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누스와 결전을 벌이기 전날 밤 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병사들의 방패에 자기 이름의 첫 두 문자(그리스어 XP)를 써놓도록 했고, 다음날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빛에 잘게 갈라진 십자가를 보았는데 하늘에서 이 표식으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한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는 아폴로와 미트라스의 모습으로 구현되는 태양 신앙을 믿었던 이교도였으므로 비슷한 유형인 크리스트교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거부감이 별로 없었고, 크리스트교의 합일 문자와 태양에 관한 신비롭고 암식적인 표식을 혼동하였다. 당연히 이 표식은 미트라스 태양 신앙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