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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미켈란젤로18

미켈란젤로_ 조수들 (1) 1508년5월 말 피렌체 시의 방벽 바로 바깥에 소재한 산 주스토 알레 무라 수도원의 한 탁발 수사가 미켈란젤로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야코포 디 프란체스코라는 1367년에 설립된 제수아티 교단(예수회와 혼동하지 말 것) 소속 수사였다. 이곳은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중 하나였는데, 특히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정원은 페루지노, 기를란다요의 그림과 함께 피렌체의 자랑거리였다. 수도원은 또한 일벌들의 집이기도 했다. 육체노동을 꺼리는 도미니크 회 수사들과 달리 제수아티 교회 수사들은 노동에 헌신적이었다. 수도승들은 부지런히 향수를 증류하고 의약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예배당 위에 있는 한 작업실의 용광로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조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주 아름다운데다 고품질이어서 전.. 2021. 3. 17.
미켈란젤로_ 도안 (2) 프레스코의 도안은 제작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반드시 ‘이단설 심문관’이라는 불길한 이름의 교황궁 공인 신학자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1508년 당시 이 자리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인 조반니 라파넬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단설 심문관직은 반드시 도미니크 수도사가 맡았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은 그들의 열성 때문에 ‘도미니 카네스(주님의 사냥개)’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수백 년 동안 역대 교황들은 그들을 장세나 종교 재판 같은 궂은일에 동원했다. 교단 소속으로 악명이 높은 수사들 중에는 토마스 데 토르쿠에마다라는 자가 있었는데, 1483년 종교 재판이 스페인에서 부활되자 2천 명가량의 이교도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 이단설 심문관 라파넬리의 업무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설교할 자를 선발하고, 필요할 경우 설교 .. 2021. 3. 16.
미켈란젤로_ 도안 (1) 로셀리가 인부들과 한창 피에르마테오의 옛 프레스코를 천장에서 뜯어내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할 새 그림을 도안하느라 분주했다. 교황은 천장 프레스코 도안의 기본 지침을 자신이 직접 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정한 대강의 도안에 맞추어 세부 도안에 몰입했다. 교황이 제시한 도안은 실제로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확실치 않다. 미켈란젤로는 비망록에 자신은 다만 알리도시 추기경이 정한 ‘조건과 합의’대로 작업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런 진술은 추기경이 도안 작업에 깊숙히 개입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미술계에 있어 의뢰인이 작품을 주문할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주문자가 지불 청구서만 받아 준다면 어떤.. 2021. 3. 16.
미켈란젤로_ 젖은 석고 위에 회화 (3) 프레스코에는 어떤 종류이든지 비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장식 대상이 벽일 경우, 평상시의 해결책은 벽돌공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인데, 먼저 밑바닥에 버팀대를 댄 비계를 갖다 놓고 위에 사다리와 램프, 발판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이전에 페루지노와 기를란다요, 그 외의 화가들이 시스티나 예배당 벽을 프레스코 할 때 이런 형태의 목재 구조물이 퇴창(밀어서 여는 창문)들 사이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장은 벽보다 작업하기에 훨씬 더 까다로웠다. 우선 비계의 상승 가능 고도가 지상 20m까지 되어야 하고, 밑에서 사제와 순례자들이 미사를 볼 경우 그들을 위해 통로를 비워 두어야 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밑바닥을 토대로 쌓아 올라가는 식의 비계(이 비계의 기둥들은 필연적으로 통로를 봉쇄할 것이다.)는 전혀 .. 2021.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