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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로마 7대 초대 성당 - 성 밖 바울 / 성 밖 로렌스 / 세바스티아누스 성당

by TES leader 2021.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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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San Paolo fuori le Mura](성 밖의 바울) 대성당

바울은 살비아 샘(aqua Salvia) 지역에서 참수형을 당했는데, 머리가 땅에 떨어지면서 세 번 튀었고 튄 곳마다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이후 바울 참수터는 트레 폰타네[Tra Fontane](세 분수)라 불리게 되었고, 현재 아르데아티노의 아쿠아 살비에 지역에 위치한다. 한편, 바울의 시신은 오스티엔세(현재의 산파올로) 성문 밖 오스티엔 세 가도(Via Ostiense)에 자리잡은 네크로폴리스에 매장되었고, 크리스트교도들은 사도의 무덤 자리에 기념 건축물(tropa-eum)을 세워놓았다. 이 건물은 크리스트교가 공인되면서 순교 기념관(martyrion)으로 바뀌었으며, 386년 이 자리에 바울에게 바치는 성당이 시공되어 5세기 초 호노리우스 시대에 완성되었다.

이 성당은 에밀리아 바실리카 등 기존 건축물에서 가져온 대리석 기둥 80개로 5개의 복도를 분리한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호노리우스 누이동생 갈라 프라키디아[Galla placidia]가 기증한 승리의 아치가 중앙 복도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아치는 거대한 이오니아식 원주가 받치는 개선문 형태로 아치 윗면에 예수에게 경배하는 내용을 묘사한 모자이크화가 있다.

1823 7 15일 밤에 발생한 화재로 성당 건물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해, 현재 측면 복도 후진과 외벽에 4세기 벽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옛 성당의 자취는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오랫동안 유지된 덕분에 정보가 많은 편이라, 1854년 건축가 폴레띠 [Poletti]가 새 성당을 옛 성당의 규모와 모습 그대로 재현해 완성하였다.

초기 성당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녔던 데 비해 새 성당의 내부는 신고전주의 시대 분위기가 반영되어 웅장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준다. 내부 길이가 132m, 65m, 높이 30m로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도금 천장 중앙에 피우스 9세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고, 원주들 위 중간 벽에는 왼쪽부터 사도 베드로에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역대 교황 264명의 원형 모자이크 초상화가 박혀 있다. 승리의 아치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13세기 고딕 양식의 천 개,그리고 13세기 베네토 미술가들이 제작한 후진의 천장 모자이크화는 1823년 화재 때 피해를 면했다. 바울의 무덤은 베드로 무덤처럼 대리석 관으로 되어 있어 가까이 가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성당 정면에는 19세기 말 굴리엘모 칼데리니[Guglielmo Calderini]가 완성시킨 사각형 주랑 현관 한가운데 바울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사도 바울이 든 책과 칼은 이방인 전도의 선봉장으로서 바울의 역할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정면 상부의 모자이크화는 축복하는 예수 양 옆에 베드로와 바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19세기에 바티칸 모자이크 공방에서 제작한 것이다. 현관 오른쪽 끝에 있는 성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한 비잔틴 양식의 문으로 2000년 성년에 교황이 열었다는 내용이 문 위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성당 부속 베네딕트파 수도원은 1214년 바쌀레토가 완공했다. 회랑은 모자이크 장식 벽돌과 코스마풍의 아름다운 원주들도 장식되어 있고, 방 안에는 옛 성당의 조각품들이 일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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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세바스티아노[San Sebastiano](세바스티아누스) 성당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순교하여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되는 지하묘지에 묻힌 성 세바스티아누스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사실상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세워진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기념관 성격을 가진 건축물이었다.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크리스트교 박해 때 위험을 느낀 크리스트교도들이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유해를 이곳 무덤 지대에 가매장했다고 하는데, 성당 바로 뒤에 있는 무덤이 두 사도를 가매장했던 곳이라 무덤 앞 기념비가 서 있던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다.

성당 건물은 1세기 후반의 빌라 건물과 납골당 건물 위에 토대 공사를 한 후 올린 것으로, 벽이 막센티우스 경기장의 벽과 비슷한 재료와 구조로 되어 있다. 발굴 결과 빌라의 방들이 여러 개 나왔는데, 그 중 한 방에서 2세기 것으로 보이는 프레스코 풍경화가 발견되었다. 한편, 성당 바닥으로부터 9m 아래에서 3개의 동굴식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트라야누스 시대쯤 형성된 동굴을 3세기 후반에 무덤으로 전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당 안에는 17세기에 안토니오 조르게띠[Antonio Giorgetti]가 조각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대리석상과 그의 몸에 박혔던 화살, 그리고 쿼바디스 성당 자리에서 옮겨 온 그리스도의 발자국이 찍힌 대리석 판이 보관되어 있다.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San Lorenzo fuori le Mura](성 밖의 로렌스) 성당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로마에서 순교한 스페인 출신 집사 로렌스를 티부 르 티나 성문 밖 길가에 매장했는데, 이곳은 1세기부터 매장지로 사용되고 2세기에 지하 무덤(카타콤베)가 생긴 곳이다. 원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료 황제인 루키우스 베루스[Lucius Veranus]였고, 1831년 콜레라에 희생된 사람들을 매장하면서 공동묘지로 자리 잡아 현재 베라노라 하면 로마 시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동묘지와 그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300년대에 키리아카라는 크리스트교도 여인이 이 지역의 소유자였으나,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소유지를 몰수당하고 자신도 순교해 그녀의 이름을 붙게 된 카타콤바에 안치되었다.

크리스트교가 공인되자마자 콘스탄티누스가 순교자 로렌스를 기리기 위해 로렌스의 무덤과 계단으로 연결된 성당을 건축했는데, 현존하는 성당은 6세기 말 펠라기우스 2세가 개축한 옛 성당과 12세기에 시작해 13세기 초 호노리우스 3세 교황이 완공한 성당이 합쳐진 것이다. 주랑 현관은 13세기에 바살레토가 건축하였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은 12세기의 세워졌다. 성당 내부에는 코스마풍의 설교단과 주교 제단, 촛대, 바닥이 보존되어 있다. 1943년 인근의 철로 폭격시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전후 원래의 자재로 복구했다. 한편, 로렌스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피가 들어 있는 호리병 2개와 석쇠 판은 몬테치토리오 궁전 뒤쪽 산 로렌초 인 루치나[San Lorenzo in Lucina]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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