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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라파엘로의 방들.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

by TES leader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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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예술 고문이자 라파엘로를 교황에게 추천한 '브라만테'

■ 라파엘로의 방들

 

보르지아 아파트의 2층에는 중세 궁전을 증축하여 생긴 4개의 방이 있었다. 교황 취임 후 보르지아 아파트를 접수해 자신의 처소로 삼았던 율리우스 2세는 알렉산더 6세와 그의 치세를 미화한 벽화들을 보고 싶지 않아 2층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율리우스 2세의 아파트가 된 2 4개의 방 가운데 일부는 바티칸 궁전에서 활동하고 있던 페루지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 의해 벽화 장식이 채워졌으나, 나머지는 빈 벽으로 남아 있었다. 이미 페루지노와 핀투리끼오를 천거한 교황의 예술 고문 브라만테는 이 빈 벽을 채울 화가로 25세의 청년 라파엘로를 추천하였고, 우르비노의 젊은이를 불러들인 교황은 시험 삼아 서재의 빈 벽을 벽화로 채우게 했다. ‘서명의 방이라 불리게 되는 이 서재 벽화로 라파엘로는 찬란한 로마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든 교황은 다른 방에 이미 그려진 벽화들을 없애고 다시 그리라고 지시하였는데, 라파엘로는 특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을 없애면서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1509년 교황의 서재인 서명의 방장식이 시작된 이래 1512~1514년에 엘리오도르의 방과 교황의 개인 식당인 화재의 방장식이 뒤를 이었고,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 이후에 공식 의전 행사와 접견에 쓰이는 콘스탄티누스의 방장식이 마감되었다. 라파엘로가 장식한 율리우스 2세 아파트의 방들을 보통 라파엘로의 방들이라고 한다.

라파엘로는 스승 페루지노에게서 조용하면서도 명쾌한 서정성을 전수받았고,로마로 온 후 조화와 우미 감을 유지하면서 보다 진하고 심오한 그림을 소화해냈다. 특히 미켈란젤로와 만나면서 입체감과 웅장미를 습득하였고, 후기에는 로마에 유입된 베네치아 화가들의 색채주의와 접촉하여 본래의 조용하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탁월한 색조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성서에 관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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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

라파엘로는 1509년 율리우스 2세의 서재인 이 방 빈 벽면에 첫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주제는 종교/ 과학/ 미술/ 철학/ 도덕을 망라한 고귀한 진리에 관한 것이었다.

종교적 진리를 표현한 <성서에 관한 토론>은 화체설(성찬(聖餐)에 관한 해석으로, 성찬시 떡과 포도즙이 사제의 축복이나 혹은 다른 어떤 방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는(떡과 포도즙의 형상은 그대로 존재하나 그 실존 양식이 변화된다는) 교리. ) 성사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였는데, 성인과 선지자들이 자리 잡고 있는 천상의 세계와 신앙 수호자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는 지상의 세계로 화폭을 나누고, 제단 위의 영성체를 중심에 놓은 대칭형 구도의 작품이다. 제단 오른쪽 의자에 앉아 서기에게 지시하는 인물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이고 오른쪽 교황 식스투스 4세 뒤에 월계관을 쓴 이가 <신곡>의 저자 단테이다. 단테 오른쪽으로 두 번째, 몸이 가려져 있어 모자 쓴 얼굴만 보이는 인물이 피렌체에 신정국가를 세웠다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한 수도사 사보나 롤라이다.

왼쪽의 창문이 나 있는 벽에는 <크리스트교의 정의>를 주제로 한 그림 3장이 있다. 창 위의 크리스트교 덕성 비유는 여인들과 큐피드들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교회법을 제정하는 그레고리우스9세(페나 휘르트의( 성 라이몬도가 교황에게 법령집을 바치는 모습),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의 민법 제정(황제가 트리 보니 아누스에게 법전을 수여하는 모습)이 있다.

 

<아테나 학당>

<아테나 학파>는 철학, 과학의 진리를 주제로 한다. 고대 철학 사상가들과 과학자들이 출현하는 작품으로 막센티우스 바실리카를 연상시키는 배경 건축물에 대칭 구도와 원근법이 제대로 적용되어 있다. 양쪽 벽감 그림에는 악기를 든 아폴로와 미네르바의 상이 그려져 있어 르네상스 시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중앙 왼쪽의 우주론에 관한 저서 <티메오>를 팔에 끼고 있는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 책을 잡고 손바닥을 펴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이상을 표시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긍정적인 영혼들의 물리적인 세계를 표시한다.

왼쪽의 진녹색 옷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이고 그 옆에 파란 옷의 크세노폰과 갑옷을 입은 그리스의 참주 알키비아데스(또는 알렉산더)가 마주 보고 있다. 왼쪽 끝 아래에 수염 난 노인이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이고, 그 옆의 포도 잎 머리띠를 두르고 글 쓰는 남자가 에피쿠로스이다. 왼쪽 앞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피타고라스이고, 책을 펴놓고 피타고라스를 내려다보는 자는 플라톤의 제자 세노크라테스이다. 탁자에 기대 명상에 잠긴 철학자 에라클리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에리클리토스는 라파엘로의 구상 스케치에 없었다는데,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훔쳐본 라파엘로가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해 추가했다는 설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은 에라클리토스를 추가한 것 외에 비슷한 스타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중앙 오른쪽 계단에 누운 노인은 견유학파 철학자 디노게네스이다. 오른쪽 끝 두 번째 젊은이가 라파엘로 자신이고, 끝의 청년은 동료 소도마이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에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살가죽만 남은 형상으로 표현한 데 비해 라파엘로가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을 느낄 수 있다. 그 옆 두 번째 긴 수염에 모자를 쓴 사람이 천문학자 조로아스트로스이고, 구부리고 작도하는 남자는 기하학의 아버지 에우클리데스로 브라만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옆의 지구본을 든 등이 보이는 남자는 천문학 체계를 세운 프톨레마이오스이다. 왕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이 천문학자와 파라오 프로레마이오스를 동일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 파르나소 (Parnaso)>

예술의 진리를 표현한 <파르나소(Parnaso)>는 음악의 신 아폴로가 자기 거처인 파르나수스 산에서 9명의 뮤즈들에게 둘러싸여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창문 틀 왼쪽 모서리에는 레스보스의 사포, 오른쪽에는 호라티우스가 있고, 아폴로의 왼쪽 하얀 옷의 여인이 칼리오페, 오른쪽 파란 옷이 티르시코레다. 칼리오페 뒤의 세 뮤즈는 왼쪽부터 타리아, 클리오, 에우테르페이고, 테르시코레 뒤에는 우라니아, 멜포메네, 폴림니아, 그리고 등을 보이고 있는 에라토가 있다. 왼쪽 위에는 나무 옆의 엔니우스, 단테,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스타티우스이고, 아래에는 알체오, 코린나, 나무 옆에 얼굴만 보이는 페트라르카와 아나크레온테가 서 있다. 오른쪽에는 아리오스토, 보카치오, 티불로스, 테바레오, 프로페찌오가 있고, 호라티우스와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오비디우스와 산 나자로이다.

그림 아래 창문 양쪽에는 단색 그림이 있는데, 왼쪽은 누마의 무덤에서 예언서를 발견하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아우구스투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아스>를 불태우지 못하게 저지하는 장면이다.

천장은 원형 그림들과 직사각형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고, 한가운데 니콜라스 5세의 문장이 있다. 원형 그림들은 <아테네 학파> 위에 (책을 든) 철학, <크리스트교의 정의> 위에는 (칼 든 여인 모습의) 정의, <성사에 관한 토론> 위에는 신학, <파르나소> 위에는 시가 비유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사이 모서리 부분에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솔로몬의 심판, 아담과 이브, 아폴로와 마르시아, 천문학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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