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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로마 연못과 분수

by TES leader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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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분수 (Ninfeo di Nerone)

■ 연못과 분수

 

수로 시설 확보로 우물이나 강물을 이용하는 단계는 벗어났지만, 로마 시내에서 상수도 혜택을 누리는 가정은 드문 편이었다. 대신 동네마다 우물형태의 급수장을 설치하여 주민들이 물을 길어다 쓸 수 있도록 했는데, 번화한 큰 사거리나 광장에는 분수 형태의 급수장을 설치하여 도시 미관을 살렸다. 공화정 말기 이래 로마 시내에는 수백 개의 분수가 물을 뿜어댔는데, 4세기에는 그 숫자가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분수 유적으로는 네로 분수(Ninfeo di Nerone)와 알렉산더 세베루스 분수(Ninfeo di Alessandro)가 대표적인데, 당시 분수를 일컫는 닌페오(님페움Nymphaeum)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정령 님프가 사는 곳이라 해서 오늘날의 분수와 달리 건물 형태였다. 네로 분수는 64년 화재 이후 잿더미가 된 첼리오(Celio) 언덕 클라우디우스 신전의 기단을 활용해 황금 궁전 안에 세운 거대한 직사각형 분수로, 한쪽 끝에 반원형 에세드 라가 있고, 양 옆에 원형과 사각형 벽감이 교대로 자리 잡은 대칭형 구조물이다. 이 분수는 현재 콜로세움 남동쪽 언덕길인 클라우디아 가도(Via Claudia)의 오른쪽 성벽 안에 있다.

알렉산더 세베루스 분수 (Ninfeo di Alessandro)

한편 테르미니 역 근처에 빅토리오 시장이라 불리는 로마 시에서 가장 큰 재래식 시장이 있는데, 이 시장이 둘러싸고 있는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광장의 한 모퉁이에는 벽돌 건물 잔해가 있다. 이 벽돌 유적이 바로 사다리꼴 기단 위에 개선아치를 올리고, 양 측면 아치를 대리석 승전 기념물, 트로페오(Trofeo) 조각으로 장식한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분수이다. 분수 기능이 멈춘 후 방치되었기 때문에 중세 로마 인들이 마리우스의 승전 기념물(Trofei di Mario)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잘못 알려져 요즘도 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기원전 1세기 초반의 인물인 마리우스와 전혀 관계가 없는 서기 3세기 건축물로 밝혀져 문헌사료에 나와 있는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분수로 확인되었다. 1589년 식스투스 5세가 승전 기념물 조각을 캄피돌리오 계단 양쪽 난간 위에 옮겨 놓았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기념비적인 분수 건물이 셉티조디움(Septizodium)이다. 20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193~211)가 아피아 가도가 시작되는 팔라티노 언덕 모퉁이에 세운 이 분수는 4열의 열주 회랑이 반원형 에세드라를 이룬 3층 분수였다. 화려한 원주와 조각으로 장식되었고 분수도 있었다. 이 건물도 고대 건축물을 희생양으로 삼아 르네상스 시대 로마 시를 변모시킨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식스투스 5세가 대규모 건축 사업에 필요한 자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분수 건축물을 해체했기 때문에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들이 남긴 그림들에서나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는 건축 사업이 유적 파괴로 이어진 또 하나의 사례가 1930년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자행된 메타 수단스(Meta Sudans) 해체였다. 콜로세움 옆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앞 철망 안에 있는 이 분수 유적은 흘러내린 물을 받아주는 원형의 시멘트 받침돌과 물을 올려주기 위한 지름 90cm의 연관 튜브 부분만 남아 있는데, 베네치아(Venezia)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 제국로를 건설한 무솔리니가 콜로세움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나 아피아 가도로 이어지는 개 선로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파괴하여 기저부만 도로 아래 묻혀 있다가 최근에 발굴되었다.

메타 수단스 (Meta Sudans)

인구 증가와 시내 공간 확장으로 새로운 행정구역의 필요성을 느낀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시를 기존의 4개 구역 대신 14개 구역으로 세분했는데, 메타 수단스 분수가 자리 잡은 곳은 그 중 4개 구역이 만나는 경계 지점이었다. 원래 이 분수는 대리석 판으로 덮은 뒤집힌 뿔 모양의 벽돌로 만든 몸통을 커다란 원형 대리석 수반 위에 세우고 그 위에 솔방울 조각을 올려놓은 모양인데, 그 모양이 대전차 경기장 트랙의 반환점에 세워진 메테(metae)(경계, )와 비슷하고 뿔 위에 모인 물이 마치 땀을 흘리듯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메타 수단스(meta sudans)(땀 흘리는 선회 지점)라 불렸다. 기공질의 돌로 덮인 꼭대기에서 끊임없이 지하의 샘물이 흘러나온 이곳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내는 만남의 장소였고, 2세기에는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치르는 검투사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기도 했다. 메타 수 단스 기저부 옆에는 작은 건물의 잔해가 보이는데, 이는 황금 궁전 연못 옆에 있던 부속건물의 일부로 보인다.

이밖에도 로마 시내에서 여러 개의 분수 자리들이 발견되었는데, 팔라티노 언덕 위 플라비우스 궁전(Domus Flavia)의 식당 자리 아래에서 찾아낸 분수는 아우구스투스의 처인 리비아(Livia)(또는 그녀의 아들 티베리우스 Tiverius 황제) 궁전의 분수로 밝혀졌고, 카이사르 광장 옆의 아르젠 타리오 언덕길에 있는 작은 분수 유적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제작된, 벽감 앞에 수조가 설치된 말굽형 분수이다. 네로의 황금 궁전 유적지에서도 2개의 큰 분수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팔각형 방 앞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분수이고, 다른 하나는 뒤쪽 회랑 정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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