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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로마 목욕 문화(2)

by TES leader 20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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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년  6 월  22 일 개장한 트라야누스 목욕장 (Terme Traiane)

네 번째 목욕장은 트라야 누스(Traianus)황제(98~117)의 지시로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 104년경 황금 궁전 본관 건물 위에 시공하여 109 6 22일 개장한 트라야누스 목욕장(Terme Traiane)인데, 대칭형 구조에 오락, 문화 공간을 겸비한 최초의 복합 시설 목욕장이었다. 아폴로도로스는 대리석과 예술품을 빼낸 후 네로의 황금 궁전을 흙으로 덮어 새 목욕장의 기반으로 활용했는데, 그 덕분에 땅속에 묻혀 고스란히 보존된 오피오 언덕의 건축물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콜로세움 맞은편 오피오 언덕 공원에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이 목욕장의 잔해를 볼 수 있다.

한편, 오피오 언덕 공원 북동쪽에 세떼 살레(Sette Sale)라는 트라야누스 목욕장과 관련된 유적이 남아 있다. 시멘트 골조에 벽돌을 입힌 이 2층 구조물은 목욕장에 공급할 물을 816 5,000L나 저장한 거대한 저수조이다. 저수조 내부는 9개의 기다란 물탱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 물탱크의 뒷부분에 수로와 연결된 공급관이 있고, 세 번째와 일곱 번째 물탱크에 청소할 때 드나드는 입구가 있다.

 

217 년에 개장된 카라칼라 목욕장 (Terme di Caracalla)

목욕장 건축의 압권은 217년에 개장된 카라칼라 목욕장(Terme di Caracalla)이다. 400 330m 규모의 직사각형 담장 안에 220 114m 크기의 목욕탕 건물과 정원, 체육관, 그리스 어와 라틴 어 도서관, 부대시설이 자리잡은 이 목욕장은 한꺼번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아쿠아 마르키아 수로의 전용 수도관과 연결된 8L 용량의 거대한 저수조와 땔나무용 목재를 보관하는 창고들도 있었다.

이 목욕장은 과감하고 새로운 건축 유형, 독특한 시설 배치와 난방 체계, 다색 대리석과 금속들로 덮인 건물과 분수, 화려한 조각들로 당대 로마 인들의 긍지를 한껏 부풀려 놓았고, 고대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로마 인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폐허 속에서 찾아낸 고대 조각품들은 그리스 조각의 정수를 살필 수 있는 로마 시대 사본들로, 그리스 조각가 글 리콘이 제작한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 상(Ercole di Glicone Farnese)> <파르네제의 황소 상(Gruppo del Toro Farnese)>, <플로라(Flora)>는 현재 나폴리 박물관에, <각질 벗기는 운동선수 상>은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거대한 대리석 욕조 2개는 파르네제 궁전 앞 광장에 놓여 있다. 한편, 페르시아 신 미트라스의 사당(Mitreo)이 목욕장 담장 한쪽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로마 시내에서 찾아낸 가장 큰 것이다.

그리스 조각가 글리콘이 제작한  <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 상 (Ercole di Glicone Farnese)>

카라칼라 목욕장은 1930년대에 여름철 야외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부활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 무솔리니는 보통 공연이 시작될 때 온탕의 남아 있는 북쪽 두 벽을 배경으로 삼은 가설무대에 마술같이 등장하였는데, 무대와 연결된 지하 통로나 건물 기둥에 쳐놓은 거대한 그물망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이곳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기념행사로 3대 테너가 협연한 무대이기도 한데, 공연할 때마다 소프라노들이 내는 고음에 벽에 금이 갈까 봐 마음 졸인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문화재 관리국에 의해 오페라 공연이 중지되었다가 2000년 성년을 맞이하여 재개되었다.

제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군인 황제 시대(235~284)가 지나고 안정을 회복한 3세기 말에 그 규모와 시설 면에서 카라칼라 목욕장을 능가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Terme di Dicoleziano)이 비미날레 언덕에 자리 잡았다. 건축한 황제의 이름이 붙은 달느 목욕장들과 달리 이 목욕장은 소위 ‘사분령 시대(293~312)’(2명의 황제와 2명의 부황제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한 시대)에 이탈리아와 서방 지역을 통치한 막시마 이누스(Masimianus)황제(286~305, 306~308) 298년 건축하였으나, 동방 지역의 황제이자 지위가 더 높은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ntianus)(284~305)의 이름이 붙었다. 로마의 관문이 테르미니(Termini)역을 나와 친퀘첸토(Cinquecento) 광장에 들어서면, 전면에 웅장한 벽돌 건물들이 보인다. 이 광장 앞의 큰길을 오른쪽 담장으로 하고 레푸블리카(Republica) 광장의 반원형 에세드 라(esedra)를 전면으로 한 이 목욕장은 본관 건물만 250 180m 넓이의 담장 안 총면적이 32 ha(380 365m)에 달하며 수용 인원이 3,000명 이상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 (Terme di Dicoleziano)

아피아 가도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카라칼라 목욕장 지대는 로마 제국이 몰락한 후 방치된 채 근대에 이르렀고, 오늘날에도 초지로 남아 유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이에 반해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이 들어선 비미날레 언덕 지대는 로마 인들의 정주 특성 때문에 중세 시대에도 방치되지 않았고 근대 이래 계속된 건축 사업을 겪은 곳이라, 수로 파괴 이후 기능을 상실한 이 목욕장의 건물과 시설 대부분이 후속 건물들에 잠식당해 사라져 버렸다.현재 남아 있는 목욕장 유적의 일부는 당시의 것을 모방해 재건한 것이고 건물 중앙의 벽들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Santa Maria degli Angeli) 성당과 국립 로마 박물관 건물에 포함되었다. 레푸블리카 광장에 반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기둥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 대大에세드 라의 외벽 선에 자리 잡은 것이고, 비미날레 길(Via del Viminale) 초입에 튀어나와 있는, 매연에 찌들어 까만 벽돌건물과 16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인 산 베르나르도(San Bernardo) 성당은 목욕장 정면 양 모서리에 위치한 원형의 방을 활용한 건물들이다. 1889년 목욕장의 수영장 자리에 고대 로마 미술품을 보관하기 위한 국립 로마 박물관이 들어섰다. 흔히 테르미니 역의 이름을 터미널, 종착역으로 잘못 해석하는데, 사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테르메)의 급수 조가 역사 자리에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Santa Maria degli Angeli)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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