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82 미켈란젤로_ 음모 (3) 이 대목까지 언급한 로셀리는 미켈란젤로가 절대 천장 프레스코 건을 맡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브라만테가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성하, 제 생각으로는 미켈란젤로 선생은 이 일을 해낼만한 충분한 용기나 배포가 없습니다. 선생은 아직 인물화 경험이 충분치 않습니다. 더구나 천장에 그리는 인물화는 그에 필요한 원근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건 땅에 발을 디디고 그리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미켈란젤로와 달리 수많은 프레스코를 그리며 경력을 쌓아온 브라만테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브라만테는 15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사람인 우르비노 태생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문하에 들어가 화가 수업을 받았다. 그런 뒤에 베르가모와 밀라노로 가서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이때 그린 것 중 .. 2021. 3. 5. 미켈란젤로_ 음모 (2) 로마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일신하고자 한 율리우스 2세는 브라만테에게 큰 건물과 기념물을 되도록 많이 세우도록 했다. 그로 인해 로마를 명실공히 가톨릭 교회의 성지이자 주민과 순례자 모두에게 훌륭한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브라만테는 우선 티베르 강 양변의 도로를 확장하고, 포석을 깔고, 포장할 것을 주문했다. 우기가 되면, 로마의 도로는 나귀의 꼬리까지도 진흙탕에 처박힐 만큼 난장판이 되었다. 브라만테는 낡은 하수관을 교체하거나 수리했고, 티베르 강 바닥을 준설해 위생과 운항 능력을 높였다. 또한 상수도관을 새로 깔고, 로마 시 외곽에서 청정수를 끌어다 자신이 건축한 산 피에트로 광장의 중앙 분수에 댔다. 브라만테는 바티칸 궁을 미화하는 작업에도 나서, 1505년 교황 궁과 벨베데레 .. 2021. 3. 4. 미켈란젤로_ 음모 (1) 미켈란젤로_ 음모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는 둘 다 재능이 특출 나게 빼어난 데다 대단한 야심가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사교적인 브라만테는 근육질 몸매에 오뚝 솟은 코, 야성적으로 흐트러진 흰 머리칼을 가진 미남이었다. 거들먹거리고 빈정대기도 했지만, 교양이 풍부하고 순발력도 있는, 매우 쾌활하고 너그러운 남자였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브라만테는 훗날 엄청난 부를 모았다. 그러나 사치의 취향도 함께 커져, 나중에는 험담꾼들에게서 어떤 도덕심도 통하지 않을 정도라는 악담을 들어야 했다. 미켈란젤로가 루스티쿠치 광장 뒤에 조그마한 공방에서 평범한 생활을 꾸려갈 때, 브라만테는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바티칸 북쪽의 교황 별궁 벨베데레(Palaz.. 2021. 3. 3. 미켈란젤로_ 소환 (2) 웅대한 새 성전의 설계 책임자는 교황청 전속 건축 설계사이자 미켈란젤로의 친구이며 스승이기도 한 줄리아노 다 상갈로였다. 63세의 피렌체 출신 상갈로는 평소 자신이 지은 건축물의 일람표를 차고 다니며 자랑하고 했다. 사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에 수많은 성당과 궁전을 건축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제노바 근교의 사보나에 지은 대저택 로베레 궁전(Palazzo Rovere)이었다. 또한 로론체 데 메디치에게서도 총애를 받아 피렌체 근교의 포조 아 카이아노에 별궁을 설계했다. 로마에서는 도시의 요새이기도 한 산탄젤로 성의 보수공사를 지휘했다. 또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보수공사도 해냈는데, 천장 치장에 신세계에서 최초로 반입한 금을 사용했다. .. 2021. 3. 2. 이전 1 2 3 4 5 6 7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