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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포로 로마노(로마 광장)의 유적들 2

by TES leader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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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라, 움벨리쿠스움 벨리 쿠스, 밀리아리움 아우 레 룸

로스트라(Rostra)는 정치가들이 모여든 시민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펴던 연단으로 혼란기에는 이 연단 위에서 포고문이 읽히기도 했다. 기원전 338년 반란을 일으킨 볼 시(Volsci)족을 안 찌오(Anzio)에서 격파한 후 볼 시 족의 함선들에게 탈취한 청동 충각(Rostra)들로 이 연단을 장식했기 때문에 로스트 라라 불리게 되었고, 로스트라가 연단을 뜻하는 낱말이 되었다. 원래는 원로원 앞 코미 티움에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코미 디움을 정리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시키도록 지시했고, 기원전 29년 아우구스투스가 이전 기념식을 거행했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가문 이름인 율리우스를 붙여 로스트라 율리아(Rostra Iulia)라고 한다. 로스트라는 길이가 24m에 폭이 12m, 높이가 3m인 건축물로 입구의 반원형 계단과 내부 벽돌 기둥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북쪽으로 건물이 증축되었는데, 증축된 부분은 470년 반달 족의 침입을 격퇴한 기념으로 시 장관 발렌티누스가 덧붙인 것이라 로스트라 반달 리카(Rostra라 불린다.

 

로스트라 왼쪽에 콘스탄티누스가 세운 움 벨리 쿠스(Umbelicus)기념 건물의 유적이 있다. 움벨리쿠스는 배꼽이라는 뜻으로 로마 세계의 중심을 가리키는 자리였다. 이 지점에서부터, 사크라 길과 캄피돌리오 언덕을 잇는 클리 부스 카피톨 리누스(Clivus비탈길이 시작되는데, 이 길은 베스파시아누스 신전과 사투르누스 신전 사이를 통과해 캄피돌리오 언덕을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한편 사투르누스 신전 왼쪽에 뻗어 있는 길은 비 쿠스 유가리우스(Vicus로 그 초입에 밀리아 리움 아우레움(MILIARIUM유적이 남이 있다. 밀리아리움은 로마 인들이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공용도로 상에 세운 표석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0년에 이 신전의 아랫부분에 이 원주로 된 기념물을 세웠는데, 원주에는 이 자리가 공용도로가 시작되는 이상적인 출발점이라는 내용과 로마에서부터 로마 제국 내의 주요 도시들까지의 거리가 황금으로 도금된 청동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현재는 팔 메타 부조 장식이 있는 원주의 기반 대리석 조각만 남아 있다.

 

 

포카 황제의 기둥과 광장 중앙부

포카 황제(Colonna di Foca)의 기둥은 높이가 13.6m인 코린트식 기둥머리를 한 기념 원주로 비잔틴 제국의 포가 Foca황제(602~610)가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키우스 4세에게 기증한 데 대한 감사 표시로 2세기의 원주를 재활용해 세운 것이다. 주춧돌 위에 있는 비문에 608년8월 1일 비잔틴 제국의 이탈리아 충독 스마랄도가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 원주는 로마 광장에 마지막으로 들어선 고대 유적이다.

기둥 옆에는 주변 지역보다 낮은 사다리꼴 모양의 공간을 둘러싼 대리석과 석회석으로 된 울타리가 있다. 이 공간이 라무스 쿠르티우스(Lacus Curtius), 곧 쿠르티우스의 호수가 있던 자리다. 쿠르티우스와 관련된 전설은 2가지로, 기원전 5세기에 이 도시가 당면한 재난을 피하기 위해 인신 공양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신탁이 나오자, 기사 마르쿠스 쿠르티우스가 애마와 함께 이 호수에 몸을 던졌다는 설과, 사빈 족의 장수 메티우스 쿠르티우스가 로마 인들과 싸우던 중 빠져 죽었다는 설이 있다. 이는 광장이 자리 잡은 계곡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호수에 대한 로마 인들이 꾸며낸 이야기로, 사실은 기원전 445년에 콘술 가이우스 쿠르티우스가 벼락을 맞아 깊이 파인 자리에 우물을 만들어 축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로마 광장의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길바닥은 대부분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것이다. 포카 황제의 기둥 옆 바닥에 기원전 12년에 프로토 르 네비우스 수르디누스(Lucius가 광장의 바닥을 포장했음을 기념하는 비문이 있다. 그 위에 64년 로마 대화제 이후에 포장된 또 다른 길바닥이 있었는데, 발굴작업 때 중세의 길바닥으로 잘못 여겨져서, 안타깝게도 모두 제거되고 말았다. 반면에 이 바닥 아래에 위치한 카이사르 시대 바닥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노老 플리니우스는 <자연사>에서 로마 광장 중앙부에 무화과, 올리브, 포도나무가 있다고 기록했는데, 현재 이곳에 있는 나무들은 기록에 의거해 최근에 포카 황제의 기둥 옆에 심은 것이다. 나무들 오른쪽에 카이사르 시대 바닥을 보여주는 움푹 파인 공간이 하나 있다. 이 구덩이는 카이사르 시대에 만든 지하 갱도와 연결된 것으로 그 안에서 목재 승강기 유물이 나온 점으로 보아 이 지하 갱도가 카이사르 시대에 광장에서 벌어졌던 검투사 시합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수르디누스가 도로를 포장할 때 우물과 갱도를 덮어버린 이유는 스타ㅣㄹ리우스 타우루스가 마르스 평원에 상설 원형경기장을 세워 더 이상 로마 광장에서 검투사 시합을 벌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직사각형의 지하공간이 있다. 이 자리에 91년 게르만 족 정벌을 기념하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81~96)의 기마상이 서 있었으나, 96년 이 황제가 살해된 후 파괴되어버렸고, 이후 한동안 기단 위에 현재 원로원 안에 있는 트라야 누스의 방벽(pluter)이 놓여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 말의 세 다리르 받쳤던 3개의 석회화 기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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