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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Italy/로마사 (Roma History)

로마 극장과 연극의 시작

by TES leader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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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극장과 연극

 

그리스의 연극, 정확히 말해 아테네의 연극은 디오니소스 신앙과 관련된 종교 축제의 성격을 뗬다.그러나 점차 다른 신들의 제식이 추가되고, 정치적 사건들도 주제로 쓰이게 되면서 서서히 의식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세속적, 문화적 측면이 커졌다.

그리스 세계와 접촉한 결과 로마에서도 기원전 240년 그리스 희극과 비극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공연되었고, 이보다 100여 년 전인 기원전 364년에는 에트루리아 인 배우들의 1인극이 공연되기도 했다. 이미 상당히 세속화한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연극을 받아들인 로마의 극장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성격은 연극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미쳐 극작가나 배우가 모두 낮은 계층에서 나왔고 배우를 가리키는 히스트 리오란 말 자체가 경멸 조의 말이었다. 보통 극작가나 배우는 노예가 아니면 해방 노예였는데, 이들은 주로 서민층 거주 구역인 아벤티노 언덕과 퀴리날레 언덕, 수부라 비탈길에 살면서 동업조합을 통해 활동하였다.

 

연극이 시작되면 무대 앞에 설치된 막이 내리면서 무대가 나타나는데 무대 뒤에는 무대 배경(scaenae이 설치되어 있었다. 배우들은 때론 거친 관객들을 다뤄야 했고, 악사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배우들은 얼굴 표정을 묘사한 삼베나 나무로 된 가면을 썼다. 이 가면을 페르소나 persona라 했는데, 사람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페르소나나 영어의 퍼슨 person이 이 말에서 유래했다. 옷과 다리에 색칠을 해 남녀노소를 구분했고, 음향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배우들은 자신의 목소리에 의존했다.

 

그리스에서는 공연을 할 때마다 극단과 합창단을 선발한 반면 로마에서는 직업적인 상설 극단들이 활약했으며, 축제를 조직하는 관리나 개인은 단장에게 현금을 주고 공연을 맡겼다. 공연은 주로 종교 축일에 있었는데, 축제 공연의 성격 때문에 무료입장이었다.로마의 연극 공연은 전차 경주나 검투사 시합만큼 인기를 누리지 못해 상대적으로 관객이 적은 편이었으며, 극단의 인기가 다음 공연계약을 좌우했기 때문에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극단들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팬클럽 비슷한 것들도 조직되어 이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물론 시대별로 사회계층에 따라 다양한 취향의 관객이 존재했고, 성공작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스 비극보다는 희극과 풍자극이 더 인기가 높아 자주 공연되었는데, 무대배경도 극의 종류에 따라 달라졌다. 로마 시대 극작가로는 플라우투스 Plautus와 테렌티우스 Terentius가 유명했는데, 주로 풍자극을 쓴 플라우투스의 인기가 더 높았고, 테렌티우스의 연극은 심오한 반면 그만큼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한편 극장은 귀부인들이 자기를 과시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오비디우스는 그녀들은 연극을 보러 가고 자신을 보여주러 간다,”라고 비꼬았다.

 

연극의 전성기는 그리스 세계와 직접 접촉하기 시작한 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 때부터 기원전 1세기 초반까지였는데 이 시기에는 극장이라 부를 만한 상설 건물이 없었다. 임시로 설치한 목조 무대와 배경을 사용해 연극을 공연했고, 공연이 끝나면 해체했다. 기원전 2세기 초반에 벽으로 된 무대 배경이 등장했지만 이 또한 공연 후 해체되었다. 초기엔 객석이 없어서 고관이나 서민이 섞여 서서 관람하다가, 기원전 195년경 목조의자가 배치되고 원로원 의원용 좌석이 앞줄에 자리 잡게 된다. 공연이 끝나면 해체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극장 모양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후기의 석조 건물로 된 상설 극장에 대한 정보는 적지 않다.

 

건물 구조나 무대 장식 면에서 오늘날의 극장은 로마 극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화정 말기와 제정 시대에 나타난 상설 극장의 구조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극장 구조를 모델로 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극장은 무대와 오케스트라, 객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로마에서는 그리스와 달리 합창단 자리인 오케스트라 공간이 정무관과 원로원 의원석으로 사용되었고, 합창단은 무대 뒤에서 활약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없었던 막이 사용되었는데, 오늘날과 달리, 시작할 때 막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무대를 드러냈고, 끝날 때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무대를 거두었으며, 막간에는 막이 처지지 않았다. 그리스 극장에는 지붕이 없었지만, 로마 극장은 천막을 쳐서 햇볕이나 비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했다. 또 무대 배경도 산 아래에 위치한 그리스 극장이 자연스럽게 산을 배경으로 한 반면, 로마의 경우 평지에 자리 잡았기에 배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로마에서는 무대요 기계 사용이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그리스에서는 갑작스러운 현신을 알리는 천둥소리 나 섬광을 만들어내는 기계와, 하늘로부터 신이 내려오게 하는 장치인 권양기(메카네)가 이미 헬레니즘 시대에 활용되었으나, 로마에서는 제정 시대에 도입되었다. 중앙문 양쪽에 하나씩 설치된 삼각 회전 프리즘으로 각 면에 산이나 항구, 시내 모습이 그려져 있는 무대장치(페리 악토가)도 헬레니즘 시대에 고안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제정 시대에 도입되었다. 한편 지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카론의 계단이라 불리는 무대 위의 구멍이 있었다. 이러한 그리스식 기계들이 도입되기 전에는 훨씬 단순한 장치를 사용해 무대 효과를 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쇠그릇 안에 모래와 못을 던져 천둥소리를 냈고, 비극을 연출할 때는 진짜 죄수를 대역으로 써서 고문, 처형 상황을 실감 있게 처리하기도 했는데, 국가도 법적으로 이를 용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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